
일본식 쇼퍼드리븐의 상징, 센추리
센추리는 일본 내에서 총리·재계 핵심 인사·왕실 관련 의전 차량으로 쓰여 온 토요타의 플래그십 세단으로, 판매량보다 ‘국가 상징성’이 더 큰 모델이다. 3세대 센추리는 2018년 공개 이후 5미터가 넘는 전장, 두꺼운 C필러, 각진 실루엣을 유지하며 전통적인 의전 세단의 비율을 고수해 왔고, 최근 연식 변경을 통해 일부 외관 디테일과 휠, 컬러 옵션이 조정되면서 존재감을 다듬었다. 뒷좌석 공간과 승차감을 최우선에 둔 설계 철학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각그랜저와 닿아 있는 일본 고급차 문화
센추리의 보수적인 삼박자(긴 차체·직선 위주의 박스형 디자인·두꺼운 C필러)는 1980~90년대 동아시아 고급 세단 디자인의 기준점이 되었고, 한국의 1세대 ‘각그랜저’도 이 흐름 속에 있었다는 평가가 많다. 당시 현대 그랜저와 미쓰비시 데보네어는 일본식 쇼퍼드리븐 감성을 공유했으며, 센추리는 그 정점에 위치한 모델로 인식됐다. 즉, 오늘날 한국 올드카 팬들이 각그랜저에서 느끼는 ‘각지고 중후한 맛’의 뿌리 한켠에는 센추리 같은 일본 의전 세단 문화가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절제된 박스형 디자인, 최신 안전기술 탑재
센추리는 과장된 크롬 장식이나 과도한 곡면 대신, 최대한 절제된 직선과 평면으로 고급감을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연식 변경 모델 역시 박스형 실루엣과 큼직한 라디에이터 그릴, 전통적인 사각형 램프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센서·카메라 통합형 범퍼 디자인과 LED 조명 그래픽을 더해 현대적 인상을 살렸다. 실내는 목재·가죽·직물 소재를 섞어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전방 충돌 경고·교차로 대응 제동·차선 유지 보조 등 토요타 최신 안전 패키지를 탑재해 의전용 세단으로서의 안전성을 끌어올렸다.

V8 하이브리드에서 이어지는 정숙성 집중 세팅
3세대 센추리는 5.0리터 V8 가솔린 엔진과 하이브리드 시스템, eCVT 조합을 통해 최고출력 431마력급 동력을 내면서도, 급가속보다는 저회전 토크와 정숙성에 초점을 맞춘 세팅으로 유명하다. 쇼퍼드리븐 차량답게 서스펜션 세팅과 방음 설계가 뒷좌석 승차감 위주로 최적화되어 있으며, 엔진·모터·변속 시스템이 개입하는 과정도 최대한 ‘느껴지지 않게’ 다듬어져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즉, 센추리는 고성능 스포츠 세단이라기보다, “움직이는 응접실”을 지향하는 일본식 플래그십 철학의 집약체에 가깝다.

글로벌 확장 시 노리는 시장과 경쟁자
센추리 SUV가 이미 일부 해외 시장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만큼, 센추리 세단 역시 향후 중국·중동 등 대형 쇼퍼드리븐 수요가 두터운 지역을 중심으로 한정 판매가 이뤄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 경우 경쟁 모델은 롤스로이스 팬텀·고스트, 벤틀리 플라잉스퍼,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클래스 등 최상위급 세단이 되며, 한국 시장에서는 제네시스 G90 롱휠베이스가 자연스러운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센추리는 생산량 자체가 많지 않고 일본 내수 비중이 커, 해외 시장에서는 ‘극소량·상징성 중심’ 전략이 유력하다.

‘전설의 이름’이 다시 던지는 의미
센추리의 최신형 등장은 단순히 한 차종의 부분변경을 넘어, 전 세계 고급차 시장에서 ‘전통과 상징성’을 어떻게 지켜갈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답으로 읽힌다. 대다수 브랜드가 SUV·전기차 중심으로 이동하며 플래그십 세단 정체성이 흐려지는 가운데, 센추리는 쇼퍼드리븐·한정 생산·의전용이라는 오래된 키워드를 고집하면서도 안전·환경·기술 트렌드를 반영하는 방식을 택했다.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전설로 불리던 이름이, 일본에서 다시 태를 고쳐 묶고 세계 시장을 조심스레 바라보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