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크로스’ 김혁건, 로봇 기술로 되찾은 기적의 고음

“영원히 사랑해서, 영원히 눈물 흘리게 해…” 2000년대 초반, 전국의 노래방을 점령했던 전설의 고음곡 ‘Don’t Cry(돈 크라이)’. 그 주인공인 록 밴드 더 크로스의 보컬 김혁건이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 다시금 세상에 울림을 주고 있다.
신호를 위반한 차량이 앗아간 그의 육체적 자유는, 아버지의 헌신과 첨단 과학 기술을 만나 기적 같은 ‘제2의 음악 인생’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건은 2012년 봄, 김혁건이 앨범 녹음을 마치고 오토바이로 귀가하던 중 발생했다. 신호를 위반하고 돌진한 차량과의 충돌은 찰나의 순간에 촉망 받던 로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목 뼈가 부러지며 목 아래가 완전히 마비된 그는 약 한 달간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 상태로 사경을 헤맸다.
당시의 공포에 대해 김혁건은 “눈을 떴을 때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어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함께 음악을 만들던 멤버 이시하조차 병실 밖에서 한 시간 넘게 오열할 정도로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스스로 호흡조차 힘겨운 상황에서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노래하고 싶다’는 의지와 부모님의 사랑이었다. 김혁건이 재활 중 애국가를 부르려다 호흡 곤란을 겪자, 곁에 있던 아버지가 본능적으로 아들의 배를 눌러 소리를 토해내게 도왔다. 이것이 기적의 시작이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의료진과 연구진의 도움으로 서울대학교 로봇융합연구센터가 나섰다. 연구팀은 수억 원에 달하는 개발비가 드는 ‘복식호흡 보조장치’를 김혁건을 위해 무상으로 제작·지원했다.
횡격막을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그를 위해, 기계가 배를 눌러 공기를 밀어 올려주는 획기적인 장치였다. 아버지의 거친 손길이 최첨단 로봇 기술로 진화하며, 멈췄던 그의 고음이 다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20년 JTBC ‘슈가맨3’에서 보여준 그의 무대는 전 국민에게 전율을 선사했다. 휠체어에 앉아 기계장치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그는 전성기 시절의 원키 고음을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인간의 음역대가 아니다”라던 찬사는 “인간 승리의 목소리”라는 경의로 바뀌었다.
2025년 현재, 김혁건은 또 다른 모습으로 희망을 전파하고 있다. 대학교수가 되어 강단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으며, 개인 채널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여전히 통증을 억제하는 약물에 의지해야 하는 고단한 삶이지만, 그는 멤버 이시하와 함께 신곡 작업을 이어가며 현역 가수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노래할 때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김혁건. 휠체어라는 감옥에 갇혔지만, 그의 영혼과 목소리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비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