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주행 200m·인도 돌진… 9명 사망, 5명 부상
사고는 2024년 7월 1일 밤 9시 20분경,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발생했다. 당시 60대 후반 운전자 차 씨는 제네시스 G80 승용차를 몰고 일방통행 4차로 도로를 200m가량 역주행하다가, 중앙 가드레일과 인도를 잇달아 들이받으며 보행자 여러 명을 치고, 맞은편에서 오던 승용차 2대를 연쇄 추돌했다. 이 사고로 직장인·시민 등 9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으며,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대형 참사로 큰 충격을 줬다.

운전자는 “급발진” 주장… 국과수·EDR은 “페달 오조작”
수사 과정에서 차 씨는 “브레이크가 말랑하지 않고 굳어 있었다”, “차가 마음대로 가속했다”며 급발진과 제동 장치 결함을 주장했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차량과 이벤트 데이터 레코더(EDR, 일명 차량 블랙박스)를 분석한 결과, 사고 직전·당시 브레이크 페달이 작동한 흔적은 없고, 가속 페달이 최대 90% 수준까지 반복적으로 깊게 밟힌 사실이 확인됐다. 운전자의 신발 바닥에서 가속 페달 흔적이 나온 점도, 브레이크를 밟았다는 진술과 배치된다는 판단 근거가 됐다.

1심 ‘실체적 경합’ 7년 6개월 → 2심 ‘상상적 경합’ 5년
1심 재판부는 보행자 각각, 충돌 차량 각각에 대한 상해·사망 결과를 별개의 범죄로 보고 ‘실체적 경합’이 적용된다고 판단,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법정 상한에 가까운 금고 7년 6개월을 선고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가속 페달 오조작 한 번의 행위로 인도 돌진과 연쇄 추돌이 거의 동시에 벌어진 점(사이 시간 약 2.4초)을 들어, “하나의 행위가 여러 결과를 낳은 상상적 경합”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에 따라 처단형 상한을 금고 5년으로 보고 형량을 낮췄고, 이 판단이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유지됐다.

대법원 “급발진 증거 없다… 과실 운전이 주된 원인”
대법원 2부는 상고심에서 “원심이 업무상 과실, 인과관계, 형량 판단에 있어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피고인과 검찰 양측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판결문 요지에 따르면, 법원은 사고 원인을 “제동페달로 착각해 가속페달을 밟은 운전자의 과실 운전”으로 규정하고, 급발진 가능성은 과학적·객관적 증거가 없다고 재차 확인했다. 다만 현행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는 다수 사망자가 발생한 교통사고에 대한 별도의 가중처벌 조항이 없어, 9명이 숨진 사건임에도 금고 5년이 법정 상한에 가까운 형량이라는 구조적 한계도 드러났다.

‘페달 오조작 사고’와 고령 운전 대책 논의로 번지다
이번 판결 이후, 고령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 사고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더 거세졌다. 정부는 이미 2029년 이후 출고되는 신차에 대해 ‘가속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탑재 의무화를 예고했고, 고령 운전자에 대한 적성검사 강화·면허 자진반납 유도 등 종합 대책도 논의 중이다. 국과수는 2020년 이후 접수된 급발진 의심 사례 364건을 분석한 결과,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이 확인된 사례는 없었고, 상당수는 페달 오조작·과속이 주요 원인이라고 발표해, 향후 유사 사건에서 제조사 결함 주장이 채택되기 더 어렵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시청역 역주행 참사’는 법원이 급발진·차량 결함보다 운전자 과실을 엄격히 본 대표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동시에 다중 사망 교통사고에 대한 형량 체계, 고령 운전자 관리, 페달 오조작 방지 기술 의무화 등 교통안전 정책 전반을 손봐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를 더욱 키운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