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민에겐 제재, 재벌에겐 면허”라는 현실 인식
이재명 대통령은 업무보고 자리에서 교통범칙금의 실효성을 문제 삼으며, 재력가에게도 제재 효과가 있도록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현행 범칙금은 위반 행위 유형과 정도에 따라 정액으로 부과되기 때문에, 소득·자산 규모와 무관하게 5만~10만 원 수준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은 “서민에게는 10만 원이 제재가 되지만, 일정 재력이 있는 사람은 10장을 받아도 아무렇지 않은 것 아니냐”는 취지의 발언을 통해, 반복 위반의 구조적 원인을 짚었다.

소득 비례 벌금, 해외에선 이미 운영 중
소득에 비례해 벌금을 부과하는 방식은 전혀 새로운 발상이 아니다. 북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데이파인(day‑fine) 제도로 이미 정착되어 있고, 과속·신호위반 같은 교통법규 위반에도 적용된다. 같은 속도 위반이라도 연소득이 높은 사람은 수백만~수억 원대 벌금이 나올 수 있어, “부자에게도 똑같이 아픈 벌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에서도 이 같은 해외 사례가 소개되며, 재벌·고소득층에게 실질적 억지력을 갖기 위한 방향으로 교통범칙금 체계를 개편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경제형벌 합리화와의 연결선
이 대통령은 교통범칙금 문제와 함께 경제형벌 전반의 합리화 필요성도 강조했다. 취지는 두 가지다. 첫째, 재산·경제와 관련된 범죄·위반에 대해선 단순 징역형보다 경제적 제재를 강화해 실질적 책임을 묻자는 방향성이다. 둘째, 그 과정에서 수사권·기소권 남용을 막고, 경미한 사안은 형사절차로 끌고 가지 않는 ‘선별주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교통범칙금을 소득 비례로 바꾸자는 제안 역시, 경제적 능력에 맞는 책임을 지우자는 큰 틀의 논의 안에서 이해된다.

경미 사안은 줄이고, 중대 위반은 더 세게
업무보고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검찰의 기계적 항소·상고 관행을 지적하고, 초코파이 절도 사건처럼 사회적 해악이 거의 없는 경미 사안은 아예 기소하지 않는 제도를 검토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는 “사소한 사건에는 형사 사법자원을 낭비하지 말고, 진짜 위험하고 반사회적인 행위에 수사·제재 역량을 집중하자”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교통 분야로 옮기면, 단순 실수 수준의 사안은 교육·경고 위주로, 반복적인 과속·음주 등 중대 위반은 소득 비례 벌금이나 가중 처벌로 대응하자는 방향과 맞닿는다.

‘형평성’과 ‘실효성’ 사이, 남은 쟁점들
교통범칙금을 재산에 따라 차등 부과하는 방안은 형평성과 실효성을 동시에 겨냥하지만, 논쟁거리도 적지 않다. 같은 법 위반인데 소득이 높다는 이유로 훨씬 많은 금액을 부과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 자산·소득 산정 기준을 어떻게 둘 것인가, 사생활 침해 소지는 없는가 등이 대표적 쟁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 위반을 일삼는 재력가에게 현행 범칙금은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다는 현실 인식이 분명한 만큼, ‘누구에게나 똑같이 아픈 벌금’을 만들기 위한 제도 설계 논의는 앞으로도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